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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내장 종류 소창 순대 대창 곱창 막창 오소리감투 용도 및 특징

돼지 내장 종류 소창 순대 대창 곱창 막창 오소리감투 용도 및 특징

보살은 보리살타의 줄임말로 깨달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혹은 각유정, 대사, 고사, 개사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며 그것들을 모두 관통하는 큰 뜻으로는 이미 부처님의 진리를 깨친 중생으로 하여금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들을 교화해야하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의 사상에 따라 보살은 부처님이나 혹은 부처님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 정진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으므로 모든 불교 수행을 하는 신도를 전부 보살이라 일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의 넓은 의미의 보살들이 더해지게 되었습니다.

세번째 보시는 무외시입니다. 무외시는 모든 두려움을 제거하여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보시입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어린아이가 권투도 성공적으로 한 해낸 기운도 센 자기 형과 함께 다니면 어디를 가든지 겁날 것이 하나도 없고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싸움은 커녕 도망가기 바쁘던 아이도, 든든한 형과 같이 있다면 자기보다. 힘센 친구에게 얼마든지 당당해질 수 있고 깡패들이 몰려와도 힘을 딱 주고 버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외시입니다. 든든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두려울 게 없는 것입니다. 나아가 마음의 안심입명을 완전히 얻은 인원은 죽음에 임해서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렇게 생사의 두려움까지도 다. 해탈시켜주면 그것이 바로 최상의 무외시인 것입니다. 나아가 성현(聖賢)의 가피를 입는 것도 무외시에 속합니다.


문수 보살
문수 보살


문수 보살

지혜를 완전히 갖춘 보살로서 이미 성불하여 용존상불, 대신불, 신선불이라 하며 또 장래에 성불하여 보견 여래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문수보살은 오른손에 칼을, 왼손에는 푸른연꽃을 쥐고 있는 형상을 하는데, 칼은 일체중생의 번뇌를 끊는다는 뜻이고, 푸른연꽃은 지혜와 무상의 지덕을 맡아서 마음속에 아무런 갈등이 없는 한없이 고요함을 타나낸다. 산스크리트어 Mantildejur 한자어 화엄경에 의하면 문수보살은 보현보살과 함께 비로자나불의 양쪽 협시보살이 되어 삼존불의 일원을 완수하고 있습니다.

보현보살이 세상 속에서 실천적 구도자의 모습을 띠고 행동할 때 문수보살은 사람들의 지혜의 좌표가 되었습니다.

두번째 보시는 법시입니다. 흔히 법보시라고 칭하는 법시는 사람들이 온전한 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진리를 베 풀어주는 것입니다. 곧 재물을 보시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재물을 보시할 수 있는 근본정신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원조를 받아 왔어요. 하지만 이러한 물질적인 보시에 대하여 우리의 정신을 USA에 팔아온 것이 아니냐 하는 일부 의식있는 사람들의 주장이 지속해서 제기되었습니다.

정녕 저희가 우리의 속알맹이인 정신은 잃어버리고 물질적인 풍요에만 만족한다면, 그것이 개인이 되었든 국가가 되었든 결과는 비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면서도 정신을 돌아 볼 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새 시중에서는 하나에 수십만원 하는 속옷, 수천만원짜리 명품들이 잘 팔려나간다고 합니다.

자비로써 보시하자
자비로써 보시하자

자비로써 보시하자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경전을 통해 이제까지 저희가 살펴본 세 가지 보시 중 그 어떤 보시라도 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셨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제자답게 힘에 따라 형편에 따라 법과 재물을 은혜롭게 베풀 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꼭 부처님께서 시켰기 때문에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재물과 법을 베풀어서 나와 중생의 마음 밑바닥에까지 깊이 뿌리를 쏟아지고 있는 간탐심을 보리심으로 바꾸어놓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자비로써 보시합시다. 그리고 그 자비를 더욱 승화시켜 동체대비를 이룰 수 있도록 합시다. 동체대비(同體大悲)! 그것은 한 몸의 사랑이요, 동체대비에 입각한 보시는 내가 나에게 주듯이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보시이기에 여기에는 주는 사람, 받는 사람, 주고 받는 물건에 대한 미련이 없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주었지. 많은 공덕이 있을거야. 이러한 자랑 섞인 보시는 자비보시가 아닙니다.